
차례
프롤로그
1 검찰청의 외곽의 기쁨과 슬픔
2 진실 너머의 풍경들
3 슬기로운 검사생활
4 다정한 외곽주의자
챕터 1 '검찰청의 외곽의 기쁨과 슬픔'의
첫번째 이야기 '털 있는 것들의 비극' (p19~p24) 의 내용은
사법연수원 시절때 연수생들이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봉사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의무이므로 같은 연수생 중 아는 누군가의 소개로 작가가 포함된 일군의 연수생이 요양원을 방문,
어르신들과 놀아드리는 일로 오전 일과를 요양원 정원에서 풀을 뽑는 일로 오후 일과를 보내게 된다.
내가 어른들과 놀아드리는 것인지 어른들이 우리와 놀아주는 것인지 모를 오전처럼
오후의 우리들은 이 풀이 내가 뽑아야할 풀인지 이 풀이 내가 뽑지 말아야할 풀인지 헷갈린다.
"열 포기 잡풀을 남기더라도 한 포기 나물을 제거하지 말라!" (p21) 며 웅성거리고만 있는 다른 연수생과 달리
시골에서 자란 작가는 얼핏 비슷한 모양새의 풀들도 자세히 보면 여러모로 생김이 다른 풀임을 안다.
그러므로 작가는 자신이 뭘 하는지 헷갈리던 오전과 달리 적성에 맞는 일을 척척 해나가는데
주위에 있던 '성실맨'이 작가에게 다가가 이게 구분이 되냐는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을 통해
결국 뽑아야 할 풀과 그러지 말아야 할 풀의 차이점을 언어화하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 잘 보시면 이 풀은 잎에 작은 솜털이 덮여 있잖아요... 그래서 만지면 벨벳 같은 느낌이 나요. 반면 요 풀은 맨질맨질하고요..."
"아하!"
중략
"기준은 털의 유무! 털 있는 것들을 모조리 뽑아!" (p22)
작가는 자신의 느낌을 설명한 것일 뿐이었지만 그 느낌은 성실맨을 통해 언어화 된 뒤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기준이 되어 풀 앞에서 헷갈려하던 모두에게 공표되어 전파된다.
"
나는 그날, 그 자리에서 기준을 명확히 정리한 예비 법조인들의 단호함과 성실함이 어떻게 단시간 내에 잔디밭을 정리해 나가는지를 보았다. 그들의 성실함과 단호함으로 인해 그날 '털 있는 것으로 판단받은 풀들'은 가차 없이 모두 제거되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풀들이 제거되었는지, 이 풀과 요 풀은 정확히 구분되었는지, 털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달고 있다가 함께 제거되어버린 요 풀은 없는지 혹은 털을 가지고 있었으나, 애초에 이 풀도 요 풀도 아니었던 제3의 풀, 그 무고한 희생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다만, 초여름의 햇살 아래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단호함과 성실함을 탑재한 법조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새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을 돌아보았던 생가이 난다. 어찌 되었든 잔디밭은 모두 정리되었다. (p23)
무수히 뽑혀나가야 했던 무고한 풀들과 기준을 습득한 뒤에는 한 치의 흔들림 없던 예비 법조인들의 단호한 얼굴과 얼마나 많은 오류와 무고함이 있었는지 가늠해볼 길 없이 말끔히 정리된 잔디밭. (p24)
"
현대 대다수의 문명국들이 '사형제'를 폐지하거나
우리나라처럼 사형을 선고하나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되는 이유는
사형을 실행함으로써 만들어지게 되는 '판결에 오류가 있을 경우 다시 돌이킬 수 없음' 때문이다.
앞서 작가가 언급했듯 "열 포기 잡풀을 남기더라도 한 포기 나물을 제거하지 말라!"는 법조인의 태도가
죄지은 자에게 반드시 그 죄를 물어 단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형제, 실질적 사형 폐지국, 돌이킬 수 없음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작가의 에세이는 풀로, 털이 있는, 벨벳 느낌의 이야기로 바꾸어 들려준다.
물론 내가 그렇게 읽었음으로 이렇게 설명할 뿐 저 털 있는 풀 이야기를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다르게 읽을 수 있다.
재미있고, 읽으며 생각할 거리가 많고, 그래서 기왕이면 빌려보기 보다는 사서 곁에 두고 한번 읽고,
가끔 읽고, 그렇게 잊고 있다가 또 종종 또 읽고 하면 좋을 책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작가가 전하는 에피소드 안에는 사랑도 있고 낭만도 있고 노을이나 질문도 있고
작가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 또 짧으나마 가족과 살아가는 이야기들, 좋은 검사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슬기롭게 검사로 살기 위한 이야기들도 들어있다.
무엇보다 앞서 말했든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 @ 읽다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 검사의 일이란 사실의 연쇄라는 과정에서 일부를 잘라내어 다각도로 관찰하며 진실이 무엇인지 다가가는 과정인데
그 일이 만만치 않은 걸 떠나 사실상 불가능한 것임을, 그런데도 끝내 그렇게 재구성한 사실을 바탕으로
(검사 입장에서) 유무죄라는 두 선택지 앞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데, 그래서 그 선택의 무게란 참 무거운 것이다.
- 가끔 작가가 예시로 드는 사건들을 보고 검사인 작가가 그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재구성하고 설명하고 하는 걸 보며
검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검사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자랑을 하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이 생각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비뚤어짐은 현실의 반영인데,
그래서 수사 한번 하면 다 알고 검사는 만능이고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다, 이 따위인 건가 하는 빡침이 올라오기도 한다.
- 하지만 끝까지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이해하게 된다.
검사가 다루는 것은 좋든 싫든 다른 사람의 인생이다. 누군가의 죄를 따져 묻는 일이고 그 결과로 누군가에게
벌금을 내거나 노역을 시키기도 하고 아주 좁은 공간에 가둬버리기도 한다.
그런 검사에게 하하호호, 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 미칠 거 같아요, 하면 그 사람은 정말 미친 인간일 테다.
- 그 정도 무게를 감당하기로 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동작이 딱딱할 수밖에, 말이 무거을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 타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여기서 달라진다.
-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게 타인의 삶과 생명이라 그 무게를 어떻게든 버티며 일을 해내는 사람과
결과적으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타인의 삶과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가.
- 수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고 내뱉는 인간이 누군가의 삶을 감당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을까?
- 그 무게에도 그 책임감을 끝까지 놓지않으려는 작가의 분투를 느끼기에,
작금의 현실이 현실이라 더 깊은 빡침이 올라오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 2025년이 아니라 책이 처음 나왔을 때 2021년에 읽었다면 꽤나 다를 수 도 있을 거 같은데
2022년 중순무렵부터 2024년 12월 3일의 밤까지 이미 한 시절을 경험한 터라 이 감상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 2000리터가 담기는 호수에 맑은물 1900리터와 똥 100리터가 섞여있다면
그걸 보고서 맑은 물이 5퍼센트 정도 오염됐다, 오염은 됐지만 맑은 물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분투하는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렇다. 그 물은 똥물이다.
- 그런데도 다행인 건 아주 바쁜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얼마 전 신간을 냈다는 점이다.
신간을 적는 내내는 아닐 테지만, 분명 그도 나와 같은 시간을 경험했을 테다.

- 다시 그의 글에 접속해야겠다.
접속해서 훑어도 보고 살펴도 보고 더듬어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요리조리도 보고
그것을 다 한 뒤 내 심사가 어떻게 바뀔지 다시 적어볼 생각이다.
첫 책이 좋았으니 뭐... 하면서도 여전히 심사는 또 그렇다니... 나도 좀 희한하다. 인간으로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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