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프롤로그
1부 사건 외곽의 풍경들
작가 지망 검사의 공소장
대단한 그녀
법정의 연기자들
존속살해예비죄가 품고 있는 세계
싸움의 기술
고등어 삼촌의 지하실 왕국
사기와 패기 사이
두부 공장 횡령 사건
어떤 씨닭
지역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오고 나서
세상의 끝, 그녀의 집
우리가 끝내 믿어보는 어떤 것
수사가 끝난 지점에서 어떤 이야기는 시작되지
2부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공판부장 J검사의 하루
나의 사무실 변천사
어떤 검사를 움직이는 힘
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 1
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 2
쪽박산을 위하여 건배!
검사 엄마 2
민원인의 송곳 끝이 나를 향하던 순간
검찰청 생활체조동호회
나의 댄스: 현재와 과거와 미래
경직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오늘도 무사히, 우당탕탕 공판부
3부 시골지청 안단테
시골지청 안단테: intro
여기는 심쿵요정들이 살고 있어요
웰컴 투 곶감 시티
여사님들의 꽃놀이
B검사는 버섯이 싫다고 했었지
해피엔드를 향하여, 구속영장
장화를 샀다
우리는 징검다리를 건너 스타벅스에 간다
물끄러미와 넌지시 사이에서
굿바이 상주, 올리브그린색 작별
에필로그
추천의 말
책을 읽고 제목과 같은 두 번째 챕터의 연달아 나오는 세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는
이 책에 가장 중요한 얘기가 이렇게 이어져 나오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일단 그 세 에피소드의 일부를 일단 이곳에 옮겨둔다.
"
2부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중
공판부장 J검사의 하루 중
(전략)
"오늘도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오늘 아침 복도에서 만난 공판검사가 법정으로 향하며 한말이 떠오른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경쾌하게 펄럭이던 법복자락도 생각이 난다. 이긴다는 말이 생경해서 알사탕 굴리듯 입속에서 굴려본다.
저 복도 너머의 법정에서 공판검사가 마주하게 되는 세계는 유죄와 무죄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행위가 유죄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검사가 임증하지 못한 행위는 아무리 유죄여도 끝낸 무죄다. 그러므로 공판검사는 늘 무죄가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죄가 곧 공판검사의 패배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다만 피고인이 아니다. 이 싸움에 대해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법정이 내어줄 수 있는 답은 유죄 아니면 무죄이지만, 그것으로는 다 담지 못하는 거대한 생이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자주 좌절한다. 그런 방식으로 기껏 다가간 진실의 근처가 참 별것 아니라는 사실에 무력해진다. 최선을 다해 달려간 성취의 끝에서조차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누군가의 슬픈 얼굴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애가 쓰인다. 이를테면 우리의 싸움은 그런 것들과 관련이 있다.
명확하지도 통쾌하지도 활짝 펴지지도 않는 비극, 좌절과 무력 앞에 끝내 애가 쓰이는 마음.
그러나 이기고 와라. 오늘의 선고에서 설사 무죄를 받는다하더라도, 세상의 끝에 기꺼이 서 있고자 하는 공판검사의 역할에서는 물러서지 말아야지. 무너지지 않아야지. 부정의와 혼돈과 지독한 인생의 무기력 앞에 안간힘을 쓰기를 포기하지 말아야지. 불끈 쥔 주먹이 민망해지는 순간, 창밖에 대기하고 있던 호송 버스들이 부르르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의 재판이 모두 끝난 모양이다. 수감인들도 교도관들도 판사도 공판검사도 오늘의 업무를 마무리할 시간, 공판부장 J검사도 퇴근 준비를 한다. 아침에 열어두었던 구치감 쪽으로 나 낡은 창문을 닫는다. 이제 조용히 검찰청의 오래된 습기가 내려앉을 시간이다.
p122~123
어떤 검사를 움직이는 힘 중
(전략)
... 우리나라는 3심제이니 대법원까지 3단계만 올라가면 끝날 줄 알았는데, 대법원에서 파괴되어 다시 2심을 하게 될 줄은, ㄱ렇게 돌아간 2심에서 새로 섬임된 또 다른 변호사 군단이 지난 8년간 제기된 적 없는 새로운 논점을 또 들고나올 줄은 정말이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스테이지를 깨면 다음 괴물이 나오고 마침내 온 힘을 다해 몯느 공격을 깨뜨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상치 않게 최고 괴수가 나타나는 격이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재판의 한가운데서, '이 싸움은 결국 내가 끝까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선배는 생각했다고 한다.
거대 로펌의 으리으리한 변호사 군단이 내어놓는 현란한 의견서를 받아들고 하나같이 옳은 말 같아 좌절했던 순간들, 냉방도 안 되는 한여름 사무실에서 야근해가며 더듬더듬 반박 의견서를 써내던 밤들, 낯설고도 확신할 수 없는 법리의 세계를 헤집어가며 사실과 주장을 구축해가던 순간들과 그것들이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선고의 순간들까지, 한결같이 두려웠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빛을 반짝였다. 그의 두려움에 대해 너무나 잘 알 것 같아 숨을 죽이고 그의 다음 말들을 따라갔다.
하나의 사건이 생겨나 마침내 종결되었다고 하기까지 사건의 길은 멀고 다양하다. 인지되고 수사되고 기소된 뒤에도 심급을 거듭한 재판 절차가 있다. 때로는 재판이 종결되고 확정된 이후에도 그 결과라는 것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소화되고 흡수되기까지 상당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건의 전체 여정에서 한 사람의 검사가 관여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자신이 맡은 업무가 끝나고도 사건은 계속 제 갈 길을 가겠지만 검사는 사건의 뒤를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사건은 매일 밀려오고 한 사건의 뒤를 오래 쫓을만한 여유가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다.
그러나 조금 더 솔직한 이유 하나는 사건의 뒤를 오래 바라보는 일은 어떤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 사건이라는 것이 오직 나의 행위와 판단에 의해 결정지어진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내가 뭘 잘못하진 않았나, 사건이 행여 엎어지는 건 아닌가... 그 애쓰임을 다 따라가며 감당하기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단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아마도 나보다 유능할 누군가에게 맡기는 쪽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면하고 두려움을 분산한다.
그런데 가끔은 효율적인 '두려움 분산 시스템'을 거슬러 끝내 사건의 뒤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사건이 가는 길을 따라갈 수 있는 한 따라간 다음, 그 두려움을 오롯이 기억해뒀다가 눈빛을 빛내며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선배. 그런 선배 검사의 강의를 들으며 우리는 일이 사실은 정의감도 의협심도 아닌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후략)
p134~136
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 2 중
(전략)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판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작위의무를 부과하고 그 불이행에 대하여 형사처벌 등 제재를 함으로써 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결국 내면적 양심을 포기하고 국가가 부과하는 의무를 이행하거나, 아니면 내면적 양심을 유지한 채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법원 2018.11.29. 선고 2016도11841 판결 [병역법위반])
술잔을 올려 충성과 존경을 표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에게 형사처벌의 제재가 가해질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만 술을 따르지 않았어'라는 말은 두려웠다. 나만 주류 질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두려웠고 그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두려웠다.
결국 그 두려움의 실체는 어떠한 형태의 불이익도 감수하고 싶지 않은 나의 욕망이 싫다고 외치는 내 마음의 소리를 꺾어버리게 된리라는 것, 대법원식으로 말하면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는 선택을 하게 되리라는 것'.
그리하여 나는 그 파멸의 책임을 결국 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을 것이라는 두려움, 그 끝도 없는 두려움의 연결 고리에 있었다는 생각이 지금에 와서는 들기도 한다. 내 속에 들어 있는 욕망과 두려움과 인격에 대해, 양심과 반감에 대해, 자주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보는 겨울이었다.
(후략)
p154~156
"
이 세 에피소드가 나에게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이야기 묶음으로, 그 하나의 이야기에 세세한 분할처럼 읽혔다.
왜 그렇게 읽혔는지는 나의 몫이고, 이 책을 읽으며 다른 분들은 또 각자의 몫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테다.
그 당연한 일에 그저 조금 첨가하고 싶은 것은 이 검찰 내의 외곽주의자인 작가가 인식하는 최선과 한계가
검찰 내의 중심주의자=출세 지향의 검사들 역시 같은 구조적 조건 하에서 이뤄지지는 않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닌, 끝내 누군가의 거대한 생이 있다는 사실을 (좌절의 여부를 떠나) 목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기는 일이, 경쟁에서 이기는 일이 지금까지의 삶의 모든 과정과 결과이며 늘 반복되어 왔던 일이기에
결단코 지지 않기 위해 거듭된 항소와 별건에 별건의 수사를 거듭하며 이기는 일에만 골몰하는 검사들
낯설고 확인할 수 없는 법리의 세계를 헤집다 못해 사실 자체를 헤집어 사실과 주장을 재구축하고
어떻게든 그것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도록, 술판 모임을 만들고 진술 세미나를 주도하는 있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는 검사들과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두려움을 오롯이 기억해뒀다가 그 눈빛을 빛내며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대신
어떻게 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재구축하면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확신의 눈빛을 후배들에게 빛내던 선배들
드문드문 이나마 경종을 울리듯 나오는 판결문을 보고서도 어떠한 형태의 불이익도 감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소리에 꺾여 끝내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는 선택'을 하고서도 이럴 때만 직장인이 다 그렇지, 하며 자조할 뿐
끝내 양심이라든가 염치, 수오지심 따위는 물에 밥 말아 먹은 것 보다도 더 쉽게 말아 먹어버리는 사람들이
정명원 검사님과 같은 구조적 조건 하에서 양산되는 건, 같은 밥 먹고 같은 일 하며 비슷하게 사는 데도,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같은 땅에서 서로 뿌리를 휘감으며 커도 약되는 건 약이고 독되는 건 독이다만, 그러므로
정 작가님 같은 약만 보고 거기가 다 약이려니, 해서도 안 되고 지금 뉴스를 다른 검사들을 보며 다 독이려니 해서도 안 되겠지만
아무튼 그들도 가지고 있을 그 거대한 생의 일면 또 이면을 보는 건 참 스펙타클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 @ 읽다보며 든 다른 생각
- 2부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중 '민원인의 송곳 끝이 나를 향하던 순간'을 읽으며
아, 이 양반도 검사는 검사구나, 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어딘지는 각자가 찾아보자. ;;;;
- 문장을 읽으며... 종종 박민규 작가가 생각났다.
아마도 이십대 시절 개그 소설을 꽤나 탐독하지 않으셨을까 싶은데...
그렇다면 혹시... 윤성희 작가나 정지아 작가, 또는 박현욱 작가나 이기호 작가랑 성해나 작가 등의 책을 추천 드립니다.
소동이지만 꽤나 범죄적 얘기들이 나오는 가네시로 가즈키 또한 괜찮겠다 싶은데
뭐, 왠지 다 읽어 보셨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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