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년판 서문
(전략)
... 하지만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내가 분석하여 보여주려는 것은 근대인이 아직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불안한 인간은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중략)
핵에너지 혁명 외에 사이버 혁명도 25년 전에 사람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전되었다. 우리는 지금 제2의 산업혁명에 접어들고 있다. 이 혁명에서는 인간의 신체 에너지-이를테면 사람의 손과 팔-만이 아니라 두뇌와 신경 반응까지도 기계가 대신한다.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점점 늘어나는 구조적 실업의 위협 때문에 새로운 불안이 생겨나고 있다. 인간은 거대 기업이라는 현상만이 아니라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생각하고 대개는 더 정확하게 생각하면서 거의 자동적으로 자신을 조정하는 컴퓨터 세상이라는 현상에 직면하면 자신이 더욱 왜소해진 기분을 느낀다. 인구 폭발이라는 또 다른 위험도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늘어났다. 여기서도 역시 인간 진보의 산물 가운데 하나인 의술의 발달이 특히 저개발 국가의 인구를 크게 늘려놓았기 때문에, 물질적 생산량 증가는 인구 증가와 거의 보조를 맞출 수 없다.
사회의 거대 세력과 인류의 생존에 대한 위협은 지난 25년 동안 더욱 늘어났고, 따라서 자유로부터 도망치려는 인간의 경향도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희망적인 조짐도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독재는 사라졌다. 소련권에 속하는 나라들, 특히 작은 나라들은 여전히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전체주의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나라들에서도 자유화가 진행되는 경향을 분명히 볼 수 있다. ... 이 모든 사실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자유에 대한 욕구가 비록 변질되거나 억눌릴 수는 있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단호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를 안심시키는 이런 사실들에 넘어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별로 위험하지 않다거나, 요즘에는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큼 위험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어려움은 인간의 지적 능력 발달이 감정 발달을 훨씬 앞지른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 인간과 현 상황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20세기에 살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심장은 아직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독립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인간은 혼자이고, 인간 자신을 빼고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권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뎌내려면 그들에게는 신화와 우상이 필요하다. 인간의 파괴성과 증오, 시샘과 복수심 같은 무분별한 열정을 억누르고 힘과 돈, 독립 국가와 민족을 숭배한다. 인간은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부처, 구약의 예언자들, 소크라테스, 예수,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말로만 경의를 표하면서, 그 가르침을 미신과 우상 숭배의 정글로 바꾸어버렸다. 지적 · 기술적 조숙과 감정적 퇴보 사이의 괴리로 말미암아 자신을 파괴할 위기에 놓인 인류는 그 위기에서 어떻게 자신을 구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인식은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주고, 객관성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높여준다. 가슴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어리석은 짓과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과 사고에 미치는 악영향을 겨우 한 세대 만에 극복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후략)
초판 서문
(전략)
... 이 책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개인을 속박하던 전(前) 개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졌지만,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 · 감정적 · 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고립은 참기 어려운 것이다. 개인이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다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안전히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 책은 예후보다 진단-해결보다는 분석-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의 행동 방침에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전체주의적 경향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전체주의 세력을 극복하려는 모든 행위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후략)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발췌>
왕관을 쓰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하듯
자유 의지로 독립된 하나의 개인으로 살려하는 자, 그 자유가 주는 어느 정도의 고독과 불안을 감내해야 한다.
물론 복지로 그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불안의 마지노선을 만들어주고 공동체는 서로의 고독을 보듬어줘야 하겠지만.
근데 복지와 공동체의 복원 대신 굴종과 부동산, 각자도생의 삶으로 가는 게 정의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뭐 놀랄 일은 아니다. 인류가 워낙 그래서 이런 책도 반세기도 더 전에 나온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참 더 싫기는 하지만...
아무튼 당분간 다시 야만의 시대를 살아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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