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맞은 자존심 상실감, 수치심 그리고 새로운 우파의 탄생, 앨리 러셀 혹실드 / 이종민, 어크로스
목차
1부. 우파들의 행진
1장. 정중한 목소리
2장. 완벽한 폭풍
3장. 자부심의 역설
4장. 백인 민족주의자
5장. 문을 잠근 사람들
2부. 군중 속의 얼굴들
6장. 자수성가를 향한 길
7장. 나쁜 놈이라는 자부심
8장. 나는 가짜 인종주의자
9장. 밑바닥을 딛고 서다
10장. 중독에서 벗어나기
3부. 격동하는 정치
11장. 자부심과 수치심의 대결
12장. 전향한 극우 지도자
13장. 정치를 움직인 감정
14장. 국회의사당에 울린 총성
15장. 공감의 다리
16장. 밀려난 사람들
나가는 글: 파이크빌을 떠나며
후기
감사의 글
부록 1: 연구 개요
부록 2: 공감의 다리를 건너며
주
색인
1부 우파들의 행진
1장 정중한 목소리
자부심과 수치심
내가 알게 된 많은 애팔래치아 사람이 '자부심의 역설'에 갇혀 있었다. 시골 지역인 KY-5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한편으로는 근면 성실하게 개인적 책임을 다하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다. 성공하면 자부심, 실패하면 수치심을 느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성공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면서 수치심에 취약해졌다. 상황의 희생자가 된 그들은 부당한 수치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다. (p27)
...
3장 자부심의 역설
정치를 움직이는 감정들
... 대신 나는 자부심을 '쓸모 있음being of use'을 느끼는 감정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실제로 자부심pride이라는 단어는 '쓸모 있음'을 뜻하는 후기 라틴어 프로데prode에서유래됐다. 프로데는 개인, 집단 또는 공동의 목표에 쓸모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
나는 자부심을 상위 개념으로, 명예 존중 지위는 그 하위 유형으로 구분한다. 자부심과 정반대의 감정인 수치심 역시 굴욕 치욕 당혹감 같은 다양한 감정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다. 수치심은 자아가 위축되는 불쾌한 감정으로 느껴진다. 수치심은 종종 후회, 자기 비하,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연관된다. 내가 생각하는 수치심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반면 죄책감은 나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스스로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 수치심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벗어나고 싶어하는 기존의 자기 부족감을 자극할 수도 있고 정치적 호소의 기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53)
그러나 어떻게 아무런 잘못 없이 직장에서 해고당한 사람이 자신의 책임감 부족을 자책하며 수치심을 느끼게 될까?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광부의 손자인 40세의 남자가 그 답을 내놓았다.
"수치심은 서서히 다가옵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을 예로 들어볼게요. 먼저 한 남자가 해고 통지서를 받아듭니다. 그는 가장 먼저 정부 감독관을 탓하고 그 다음에는 상사를 탓합니다. 그러다 주먹을 불끈 쥐고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대기청정법을 비난하죠. 여기에 바이든, 민주당, 그리고 딥 스테이트(음모론자들이 국가 제도 밖에 존재한다고 믿는 가사의 권력 집단-옮긴이)까지 싸잡아 비난합니다.
그런 다음 실업급여가 바닥나고 아내가 아이들에게 먹일 식료품을 살 돈이 없다고 하면 그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합니다. 돈이 필요하지만 학위가 없다면 떠나야 하죠. 하지만 가족이 여기 있는데 떠나고 싶겠습니까?
그때부터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시급 9달러나 10달러 50센트짜리 일자리만 있습니다. ... 그래서 그는 그 형편없는 일자리를 받아들이지만 아내는 다시 말합니다. '이걸로는 식비와 기름 값, 지붕 수리비를 댈 수 없어요.'
그때부터 수치심은 더 커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일자리를 찾아 23번 국도를 타고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면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수치심입니다.
그러다 만약 마약에 손을 대게 되면, 장담하건대 그는 엄청난 수치심에 빠집니다. ...
... 그는 더 이상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아닌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인터넷에서 타지 사람들이 자신을 '무식하다', '인종주의자다', '성차별적이다', 또는 '동성애 혐오자다'라고 모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그는 수치심을 안겨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합니다. 이쯤 되면 수치심은 잊어버리죠. 그저 화가 치밀어 오를 뿐입니다." (p65~67)
...
6장 자수성가를 향한 길
기나긴 자책의 여정
...
그러나 미국 전역의 많은 공화당 지지자와 마찬가지로 앨릭스도 엄격한 형태의 '자수성가적' 개인주의를 신봉했다. 전국적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71퍼센트가 부자가 되는 이유는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22퍼센트만이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공화당 지지자의 31퍼센트만이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때문이라는 주장에 동의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69퍼센트가 이에 동의했다.
소득수준의 차이가 답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빈곤층(경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 앨릭스도 여기에 해당됐다) 중에서도 36퍼센트가 "근면함"을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또한 가난이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의 산물이라는 주장에 대해 부융층 (연소득 7만 5000달러 이상)의 46퍼센트, 빈곤층(연소득 3만 달러 이하)의 56퍼센트가 동의해 부유층과 빈곤층의 차이가 놀라울 울 만큼 적었다. 그 근간에 깔린 핵심적인 생각은 이렇다. 부모의 계층이나 인종을 탓하지 말고 일에 대한 헌식 부족을 탓하라는 것이다. 앨릭스의 경우 고객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앨릭스는 자부심의 역설 한가운데 서게 됐다. (p145~146)
7장 나쁜놈이라는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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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앨릭스 휴스처럼 힘든 시기에도 아메리카드림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와이엇은 자부심의 역설에 따르는 압박감에 구애받지 않는 듯했다. 그는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아메리칸드림을 방해하는 운동에 헌신하는 데서 자신의 자부심을 찾았다. 어쩌면 매슈하임바크가 전파하려는 백인 민족주의 메시지가 일부 사람에게는 아메리카드림에 도달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탈출구(즉 '비난할 대상')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와이엇에게 중요한 것은 무법자의 자부심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다.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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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정치를 움직이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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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의 '깊은 이야기'
... 나는 우파에게는 우파의 깊은 이야기, 좌파에게는 좌파의 깊은 이야기가 있다고 믿게 됐다.
우파의 깊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아메라칸드림을 향해 참을성 있게 줄 서 있는 한 남성이다. 그의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이제 자신의 차례가 올 법도 한데 줄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줄의 꽤 앞부분에 있지만 자신의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특히 유색인종이 줄지어 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보다 앞쪽으로 끼어드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새치기꾼들이다. '대체 저 사람들은 누구지?' 그가 보기에 그들은 소수자 우대 정책 덕분에 앞서 나간 고학력 여성과 흑인들이다. 이민자, 난민 그리고 높은 연봉을 받는 공무원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 대통령이 새치기꾼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설마 저 사람들에게 나를 건너뛰라고 부추기는 걸까?' 그는 의심이 든다. 그 순간 남자의 앞쪽에 서 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그에게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 지금껏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남자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무식한 데다 성차별주의자, 인종주의자, 동성애 혐오자인 이 촌놈아!" 남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인내의 한계에 이른 것이다.
나는 당시 인터뷰하고 있던 루이지애나 주민들에게 이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내 이야기예요"나 "제 마음을 꿰뚫어 보셨네요" 같은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세금을 내면 그 돈이 새치기꾼들에게 돌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인드루 스콧 시장은 이 깊은 이야기를 듣고는 마치 앞을 내다보듯이 말했다. "그래요, 우리 애팔래치아의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네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 이야기에 새로운 장을 추가해야 해요. 이렇게 말이죠. '새치기꾼들 중에 불량배가 한 명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거칠게 밀쳐내고, 자기 친구들을 앞에 끼어들게 하고, 누군가 불평이라도 하면 폭력을 휘두른다. 그는 우리를 괴롭히는 나쁜 불량배다. 그때 줄에 서 있던 남자는 또 다른 남자를 본다. 자기애에 가득 차 있고 다소 못된 그도 불량배다. 그는 분명 결점이 있지만 살람들은 그를 용서한다. 왜냐하면 그는 좋은 불량배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쁜 불량배를 제압할 만큼 강하다. 그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우리의 불량배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비판해도 우리는 그를 편들어준다.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가 우리 불량배이기 때문이다." (p311~313)
..
4단계 수치심 제거 의례
의례는 네 개의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순간에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한다. ...
두 번째 순간에는 정치 평론가들이 트럼프를 맹비난하며 수치심을 강요한다. ...
세 번째 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이 단계에서 트럼프는 자신을 부당하게 수치심을 떠안은 피해자로 내세운다. 저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보라. 나는 선하고, 저들은 악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나와 함께하라. 이것이 세 번째 순간의 메시지다.
네 번째 순간에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긴 사람들에게 이렇게 되받아친다. ... 트럼프는 미스 아메리카 대회 방송을 취소한 유니비전을 상대로 계약 위반, 명예 훼손,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5억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네 번째 순간이 핵심인 이유는 바로 이 순간에 지나친 수치심에 시달려온 사람들이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량배가 행동에 나선 것이다.
때때로 트럼프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부각하면서 순식간에 첫 번째 순간부터 네 번째 순간까지 '수치에서 비난으로' 곧장 이어지는 일련의 발언들을 쏟아낸다. ... (p334~335)
...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건에서 트럼프는 이 4단계 의례를 더욱 거대한 무대에서 연출했다. 1단계는 의사당 난입이었다. 2단계는 대중의 충격과 기소였다. 3단계는 수치심을 안겨준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다. 4단계는 의사당에 난입한 사람들에 대한 옹호였다. 여기에 '그들이 나에게 수치심을 안기면 당신들도 수치를 당하는 것'이라는 결속의 메시지가 더해졌다. 여기에는 '그러니 우리 함께 복수하자'라는 암묵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p336)
...
...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왜 그것이 사라졌을까? 내가 (혹은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나? 아니면 도둑맞은 것인가?
많은 미국인들이 믿어왔거나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실제로 사라졌다. 이러한 상실은 그럴듯한 감정적 토대를 형성하면서 평소라면 신중했을, 미국의 12구역 주민들은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트럼프는 입버릇처럼 피해자 프레임을 되풀이하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상실'에서 '도둑맞은 것'으로 몰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지배적 서사로 발전했고, 자석처럼 더 많은 상실을 '도둑맞았다'는 개념으로 끌어들였다. p(338~339)
...
대다수 미국인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반대 증거들이 산처럼 쌓여가는 상황에서도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굳어졌다. 그리고 다른 상실감과 부당한 수치심의 근원들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이 됐다. 이는 자부심의 역설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었다.
겉보기에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자부심을 되찾아주고 있었다. 그는 대다수 미국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들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그 거짓을 한 가지 진실과 결합했다. 잃어버린 자부심이라는 진실이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강하게 결속했고 심지어 하나가 됐다. 그가 지지자들에게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은 곧 당신을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이다. 끊임없는 반복이라는 트럼프 특유의 연금술을 통해 '도둑맞은' 대상은 점점 더 늘어났다. '잃어버린 것'이 '도둑맞은 것'으로 바뀌면서 수치심도 차츰 비난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수치심이 비난으로 바뀔 때마다 슬픔은 분노로, 우울감은 격분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전류가 흐르듯 강렬하게 퍼져나갔다.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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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밀려난 사람들
...
... 1918년 11월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많은 독일인이 큰 충격과 수치심에 휩싸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독일군은 파리 문턱까지 진격했고 광활한 러시아 영토를 점령하고 있었다. 연합군이 진격하고 있었음에도 독일 신문들은 승리를 예견하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독일 제국의 황제는 독일군의 진격을 축하하기 위해 휴일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래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됐을 때 많은 독일인이 힘겹게 거머쥔 승리를 급작스럽고 터무니없게 '도둑맞았다'고 느꼈다. 그 손실은 막대했따. 180만 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더 많았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독일 화폐는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평가절하된 마르크 지폐를 수레에 가득 실어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많은 독일인이 땅에 떨어진 자부심을 수레에 실어 끌고 다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세르사유 조약은 전쟁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인정하도록 독일에 강요하고, 군대의 무장 해제와 식민지 포기, 막대한 배상금 지급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독일인들은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수치심을 틈타 강력한 인물이 권력을 잡게 됐다. 그는 배신자,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공산주의자 등 '진정한' 독일 혈통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모든 사람엑 책임을 전가했다. (p391)
발췌한 내용은 거의 하나의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부심의 역설'
그들은 대부분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삶의 태도와 가치관, 그리고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수치심이라는 함정에 더 쉽게, 더 깊게 노출된다.
이것은 특이하거나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인류는 이런 현상을 오래 또 그만큼 꾸준히 겪어왔다.
문제는 세상이 변하며 개인적 차원이나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한 사회, 지역 전체, 국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자부심의 역설에 빠져들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의 멍에를 진 독일인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처로 나치를 찾았듯
패전 정도의 스트레스와 상실감, 수치심에 노출된 사람이 미국은 물론 유럽, 그리고 우리사회에서도
요즘엔 건어물 가게 마른 오징어나 쥐포처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세계가 그런 시스템,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만들어버렸다.
레이건이랑 대처가 단지 얼굴마담이었다고 하더라도 지옥에서 토치로 매매 구워줘야할 인간이라는 사실은 좀 뒤로 치워둔 채
어쩌면 신자유주의는 전쟁과 같은 상태를 일상에 이식하기 위한 정교한 시스템이었던 건 아닐까?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제도가 아닌 특정 주체를 생산하고 또한 그런 주체의 규범적 지표로 기능하는 사회적 에토스가 됐으며
(김홍중, 육화된 신자유주의의 윤리적 해체) - 개인의 시스템화
사람들은 긍정성의 과잉의 병리적 상태에서 복종적 주체가 아닌 성과주체가 되어 자기 자신의 주인, 스스로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가 되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한병철, 피로사회) - 개인의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시스템화
가장 높은 생산성과 발전 속도를 보여줬던 전쟁 상태의 국가와 사회의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를 전쟁 없이 구현하려는,
(잠을 못 자도 '전쟁 중인데' 일 하고, 돈을 안 줘도 '전쟁 중인데' 일 하고, 아파도 '전쟁 중인데' 일하고, 일하다 죽어도 '전쟁 중인데 네가 대신 죽을래' 일하게 하고... 일을 시키는 사람에게 이런 세상이란 얼마나 근사한 세상인가)
대압착의 시대 이후 꼴같지도 않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엉기는 것도 짜증나고 떨어지는 잉여생산물을 더 바짝 땡기려는 자본가들과 그에 기생하는 학자 및 정치가들의 근시안적인 기획과 설계가 신자유주의란 것의 실체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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