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이예지 인터뷰집

살아남자 2026. 3. 7. 16:07

 

 

여자가 사랑한 여자, 이예지 인터뷰

 

목차

  • 서문

    정서경의 여자들은 고개 숙이지 않는다
    김윤아는 노래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전도연의 전성기는 지금이다
    김연경은 과거의 자신을 이긴다
    이경미는 낫을 들고 섶을 벤다
    심은경이 가는 곳은 길이 된다
    전소연은 숨기지 않는다
    김은희는 더 나은 세계를 향한다
    류성희는 당신의 기억에 패턴을 남긴다
    정보라는 투쟁한다
    모니카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씨엘은 자기 자신에 대한 권위자다
    강지영은 백발이 되어도 토크쇼를 하고 싶다
    김민경은 힘이 세다
    최은영의 여자들은 무해하지 않다

    출처

 

 

부족하다. 겨우 삼백십 몇 페이지쯤에서 끝나다니...

이 정도 사람들과 이렇게 재미지고 좋은 얘기를 했다면 적어도 800페이지쯤은 훌쩍 넘겨야하는 거 아닌가, 이 말이다.

나머지 500페이지는 이들의 삶과 생활인으로 보여준 성과물을 보며 상상으로 채워넣으라는 인터뷰어의 배려인가? 는 개뿔... ;;;

책이 짧다. 2권을 내달라! 3권! 까지는, 그렇지, 그정도가 최소한이다.

일해라! 작가도 출판사도 일해라!!

 

 

 

- 정서경

작가님은 아닌가요?

저는 못생긴 것도 좋아해요. 연상호 감독님의 <지옥>을 보고 감동받았어요. 어쩜 그리 모든 걸 못생기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글리'한 미학이 느껴졌어요. 그게 연상호라는 창작자가 예술가로서 재현하고자 하는 현실의 감각인 것 같아요. 우리가 아름답지 않은, 추악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자본이 많이 투입된 작품인데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의 어글리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세가 존경스러워요. 하지만 저는 그렇겐 못하죠 (웃음)

 

그렇다면 작가님은 어떤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솔직한 말. 거짓 없는 표현. 정확하게 솔직해서 듣는 이의 체험을 일깨우는 표현들이 있거든요. 나의 뇌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와,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들. 서사에서도, 실제로도 그런 솔직함을 가진 사람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p22~23)

 

 

 

- 김윤아

김윤아 음악의 두 축은 우울과 환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격랑을 관통하는 것은 이상한 아름다움이었고요. 김윤아는 언제 우울하고, 언제 기쁜가요?

멋진 말이네요. 기쁨은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우울은 항상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전 사람이 기쁨을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주 사랑하는 데이비드 린치의 TV 시리즈 <트윈 픽스>에서 끔찍한 살인사건 해결해야 하는 '쿠퍼 형사'를 예시로 들고 싶네요. 비록 살인사건 현장 한가운데에서도, 그는 매일 한잔의 커피와 도넛에서 행복을 찾죠.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비디오대여점에서 그 작품을 빌려 보며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어요. 기쁨은 그렇게 찾아야 해요. 이를테면 저는 아까 준비해주신 샌드위치가 맛있어서 기뻤답니다.

 

기쁨은 찾아내야 하는 것. 그리고 우울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것.

네! 살아 있으니까요. (p45~46)

 

 

 

- 전도연

인터뷰가 있기 얼마 전, VIP 시사 뒤풀이 자리에서 <무뢰한>을 함께 작업한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배우 전도연에 대해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걸 보여주는 멋진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명제에 동의하나요?

그렇게 말씀해주셨다니 감사하네요. (웃음) 제가 어릴 때 박근형 선생님께 혼나가며 연기를 배우며 느낀 게 있어요. 사람들은 연기라는 것을 가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안에 진짜의 진심이 있어야만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에 연기는 기본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연기자로서 제가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평소의 나부터 바꿔야 하죠. 저는 저 자신에게서 인물을 찾아가거든요. 그런 리얼리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보는 이들의 눈에도 다 보이고요. 그렇기에 좋은 연기를 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전도연은 어떤 걸 멋지다고 생각하나요?

멋지다. 멋지다라...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생긴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잘 받아들이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살다보면 주어진 환경,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하게 될 때가 생기잖아요. 그런 걸 받아들이고, 잘 끌어안는 게 멋진 것이죠. 그냥 그게 나고, 전도연이니까요.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전도연에게도 쉽지 않군요.

그렇죠.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고 또 비워내야 해요. 저 역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계속 노력한답니다. (p66~67)

 

 

 

 

- 김연경

김연경 같은 베테랑은, 훈련은 좀 살살 해도 되지 않나요?

절대 안 되죠, 살살 하면 안 돼요. 운동이라는 건 하루만 쉬어도 표시가 나요. 게다가 배구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팀의 스케줄과 트레이너의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감독님과는 기술적인 훈련을 해야 하고요. 전 지금도 기름진 거, 튀긴 거 안 먹고요. 절대로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돼요. (p82)

 

 

 

 

- 이경미

스스로를 이토록 날것으로, 그러나 긍정하며 그려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를 쓰는 행위는 제게 성장의 과정 같아요. 대부분의 이야기는 인물이 계속 고난과 장애물을 넘으면서 끝내 원하는 바에 도달하려는 구조잖아요. 제가 고난을 만들면, 제가 만든 인물은 그 고난을 뛰어넘죠. 그렇기에 이야기를 쓴다는 행위는 저 자신을 치유하고, 비관을 낙관으로 바꾸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일인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와 저는 마침내 희망에 도달할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죠. (웃음) (p107)

 

 

감독 이경미의 재능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요?

지금까지도 의심하며 살고 있는 것. 매일매일 실망감과 패배감을 느끼면서, 또 그걸 다독이면서 살아가는 것. 그래도 제게 자랑할 만한 게 있다면 그건 끈기 같아요. 쉽게 포기를 하지 않는 게 제 재능이죠. 어떤 건 포기하면 더 편하고 쉬울 텐데, 저는 그렇게 하질 못해요. 심지어 스트레스에 취약한 체질인데도 말이죠. 저는 현장이 너무 편하고 현장만 가면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는 감독 친구들을 보면 신기해요. (웃음) 제가 현장을 가는 이유는 작품이 완성되는 걸 보고 싶어서거든요. 그렇게 보면 전 강하진 않아요. 단지 포기하지 않을 뿐. (p111~112)

 

 

 

 

- 심은경

고독한 심은경에게 사랑이란 어떤 건가요?

영화 <헤어질 결심>을 극장에서 네 번 보면서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사랑이란 건 뭘까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 선생님이 "사랑은 죄악"이라고 하잖아요. 그걸 읽었을 때 화살에 관통된 기분이었어요. 그 문장이 지금까지도 제게서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전 그 문장을 잘 표현한 영화가 <헤어질 결심>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스스로가 판 구덩이에 들어가 익사하더라도 나만 생각하고 봐줬으면 좋겠고, 영영 누군가의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은, 그런 마음. 그게 계속 마음을 쳤어요. (p135~136)

 

 

심은경은 무엇을 믿어요?

저는 염세적인 사람이라 희망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하는 걸 쉽게 믿지 않아요. 애초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런 제게도 '진심은 통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스스로에게 상처받고, 무너지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순간들엔 타인의 진심을 믿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걸 믿는 내가 바보지, 하면서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이라는 게 존재하고 사랑이라는 게 있구나, 라는 걸 느끼는 드문 순간이 있다는 거죠. 이를테면 누군가가 이유 없이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 혹은 예상치 못한 타인의 이타적인 행동. 무정한 세상 속에서 그걸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희미하게 느껴요. (p138)

 

 

 

 

- 전소연

슬럼프가 올 때는 없어요?

저는 맨날 슬럼프고 맨날 번아웃이에요. '오케이, 타이틀 썼다!' 딱 이렇게 생각한 일주일 동안만 슬럼프가 아니죠. 하하. 그걸 이겨낼 수가 없어요. 대신 슬럼프를 핑계로 작업을 놔버리면 안 되죠. 작업이란 모름지기 그냥 하면, 하는 것인 거예요.

 

신인 떄는 모르고 지금은 아는 것이 있다면 뭔가요?

서바이벌 방송 <프로듀스 101>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 저는 제가 가진 걸 다 보여줘야 하고, 그 프로그램 안에서 뭔가를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버티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참고 버티고 견디는 것.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봤을 때 그건 정말 큰 의미가 있더라고요. 내가 당장 이걸 말하지 못하고 지금 바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해도, 기다리고 버텨서 보여주면 돼요. (p159)

 

 

 

 

- 김은희

작가님은 늘 익숙한 장르를 비틀어 신선한 기획을 내곤 합니다. 한국 민속학과 오컬트에 다중인격 스릴러가 이식된 <악귀>, 사극과 좀비물을 결목한 <킹덤>, 고전적인 수사물에 SF적 설정을 더한 <시그널> 등.

전 자기복제를 끊임없이 경계해요. 늘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싶죠. 그러니 기획부터 신선한 아이템을 찾는 거예요. 오컬트, SF, 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이 장르들을 전형적으로 풀기보단 어떻게 하면 다른 식으로 풀어볼지 늘 고민해요. 이 이야기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건지도 계속해서 점검하고요. 결국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템입니다. (p167)

 

 

자료조사를 치밀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의 초석을 닦으세요?

저도 이제 '짬바'가 있어서(웃음) 자문해주시는 정보원과 취재원들을 많이 알고 있어요. 형사님, 검사님, 법의관님, 수사관님... 한 분이 섭외되면 그분께서 또 연결을 해주시는 식으로 자문받는 분들을 넓혀가죠. 어떤 신에서 막힌다면, 그건 자료조사가 불충분해서 그런 거예요. 자기 머리로만 쓰려고 해서 그런 거죠. 이런 건 엉덩이로 버틴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녜요. 취재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저는 그럴 때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자문을 꼭 받아요. (p168)

 

 

작가님의 작품은 치밀한 장르물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 근원적 관심을 두는 것 같습니다. 1958년 가난한 소녀의 원혼에서 시작한 <악귀>, 소외된 소수민족의 원한에서 역병이 시작된 <아신전>, 모두가 배고프지 않은 세상을 추구하는 <킹덤>, 미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시그널>, 죽은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싸인> 등.

저는 늘 선택받은 사람들보다 아픔과 고민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끌려요.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잖아요. 저 역시 그런 배경에서 자랐고요. 그런 관점에서 인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다보면 늘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p169)

 

 

 

 

- 류성희

감독님 개인으로서는 어떤 걸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개개인의 고유성이 드러날 때, 그것들이 하나의 세계에 조화롭게 담길 때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일관된 톤으로 맞춰지는 것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듯한 것, 징그러울 정도로 화려한 것 각기 다른 것들이 이상하지만 교묘히 어우러져 섞여 있는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세계의 단면이죠. 한편 보편적인 아름다움이란 건 정의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시대마다 상황마다 다르고 선하고 숭고한 것이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악하고 퇴폐적인 것이 아름다울 때도 있죠. 그렇기에 제 일은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공부하고 발견하고 제안하는 일이에요. 이를테면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이들은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때묻은 장판도 아름답지 않아?'라고 묻듯이. (p193)

 

 

한국에서 미술감독이라는 직종이 낯설었던 시절,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요?

지금에 비하면 한국 영화판 분위기 자체가 여성에게 상당히 거칠었어요. 여성 스태프는 프로페셔널한 능력보다 "분위기를 좋게 하는 고분고분한 성격이 환영받는다"고 키 스태프 감독에게 지적당하기도 했죠. 제 성은 '유'와 '류'로 표기할 수 있는데, 처음엔 '유성희'라는 이름을 쓰다가 세 보이려고 '류성희'로 바꿨어요. 현장에서 아무리 살벌한 말이 들려도, 친분을 중요시해도, 저는 제 일에만 집중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어요. '나는 지금 당신들과 그런 다툼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할 일이 너무 많고,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것이 뭔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고, 한국에도 훌륭한 영화 미술이 있다는 걸 보여줄 거다. 저런 말을 들을 시간이 없다'라는 마인드로 자기최면을 걸듯 자신감을 주입했죠. '나는 나랑만 싸우자'고 생각했어요. 어떤 육두문자나 편협한 말들이 들려도 저 사람이 하는 말은 '그냥 외국어다'라고 생각하면서.(웃음) 좌절하려면 끝이 없지만 저는 당시 아는 사람도 없고, 물어볼 선배도 동료도 없었기에,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어요. 오로지 성장하는 데만 힘을 쏟았죠. 얼른 전문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p197)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제게 하나의 기도문 같은 것이 있어요.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인데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 둘의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소서." 많은 이들이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꿔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끌탕을 치기도 하며 고통스러워하잖아요. 반면 용기만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존재하는데 그 둘의 차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어 나이가 들면 노화한다는 건 바꿀 수 없는 것이에요. 어릴 적 몸이 부서져라 돌파했던 날것 같은 본능과 야생성, 애가 닳을 듯한 집착이나 열정, 비판적인 사고, 반항정신 같은 건 조금씩 사그라들죠.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용기를 지니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바꿀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 문장을 마음에 품고 나아가려 해요. (p203)

 

 

 

 

- 정보라

최근 인권을 파이 나눠먹기나 땅따먹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는 꽤나 절망하고 있는데요. 작가님은 어디서 희망을 찾으시나요?

그런 식으로 보면 세상이 점점 좁아지죠. SF에 대해 수업할 때 늘 나오는 화두는 '인간성이란 뭉서인가', 그러니까 '인간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인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매번 도달하는 결론은, 인간성을 규정하기 시작하면 결국 차별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팔다리가 있어야만 인간이라고 하면 장애인은 인간이 아니게 되겠죠. 생각하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하면 의식을 잃은 사람은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고요. 인간은 문명을 만들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하며 서로를 살해하기도 하고 애도하기도 해요. 인간성이란 정의하기 힘들고, 정의ㅣ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죠. 여성성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화장을 하는 것이 여성성이라면 바지를 입는 것도 여성성이다. 달리기를 잘하는 것도, 스케이트를 잘 타는 것도 여성성이다.' 어떤 식으로든 여성성을 한정지어 정의하면, 그 전형성에서 벗어난 여성들은 여성이 아니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닐 테죠. (p215)

 

 

수많은 죽음들을 겪어낸 우리에게 애도란 어떤 의미일까요?

애도는 굉장히 중요해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네안데르탈인의 비밀>을 보면, 동굴 안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중간 정도 시기의 유골을 발견해요. 그런데 그 유골을 보면 장례가 치러졌다는 걸 알 수 있죠. 뼈가 누운 상태로 고스란히 매장돼 있었고, 손에는 돌도끼를 쥐고 있었고, 뼈가 매장된 곳까지 벽에 길을 표시한 흔적이 있어요. 그 다큐멘터리에서 해설하는 바는, 죽은 이의 손에 돌도끼를 쥐여준 것은 저세상에 가서 또 이 물건을 쓰라는 의미이고, 그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애도를 했다는 증거, 곧 문화가 발생했다는 증거라는 거예요. 즉 애도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걸 보면 세월호 참사 때랑 똑같아요. 보상금이 얼마고, 이젠 지겹다느니... 원시인도 했던 애도를, 현대인으로서 안 하고 있다는 건 자신이 인간임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거예요.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 또한 슬프죠.

애도할 일 자체가 없어요 하는데, 그런 일을 자꾸 만들면서 애도하지 말라는 건 폭력이에요. 그리고 애도에도 차별이 있다는 게 참 속상한 일인데요. 이주 노동자는 산업재해 통계가 없대요. 그들이 얼마나 다치는지, 얼마나 죽는지 알 길이 없는 거죠. (p220~221)

 

 

스스로가 강하다고 느낄 땐 언제인가요?

행진할 때요.

 

그럼 약하다고 느낄 때는요?

데모한 다음 날이요.(웃음) (p228)

 

 

 

 

- 모니카

그렇다면 무엇이 용감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시작하는 모든 것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저는 후방 주차만 잘하는데 어느 날 평행 주차할 수 있는 자리밖에 남지 않은 거예요. 평소라면 1분도 안 걸리는 주차를 10분에 걸쳐허 했어요. 막 식은땀을 흘리면서. 하하. 전 그런 작은 것들을 해내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소한 게 모여 큰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거든요. 크게 보면, 저는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 서서 당당히 제 얘기를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도 조금은 절 좋아해주더라고요? 여태까지 살면서 그런 것들에 용기가 있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네요.

 

모니카는 용감하네요.

네, 저 용감해요. 겁은 많은데, 겁나도 울면서 하거든요. 막 무섭다고 소리지르면서 해요. (p236)

 

 

당신이 생각하는 강함이란 무엇인가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강합니다.

 

그걸 의연하게 해내는 게 쉽지 않죠.

의연한 척하는 거겠죠. 모두가. 그런데 이건 자기최면이에요.의연한 척을 계속하면 자기가 의연한 줄 알아요. 거기에 속으면 되는 거예요.

 

모니카는 강한가요?

네. 강하다고 해서 무서울 게 없는 건 아니거든요. 무서워서 눈물이 나도 의연한 척 그냥 걸어가면 돼요. 전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강한 거라고 생각해요. (p244)

 

 

 

 

- 씨엘

작가 헬렌 걸리 브라운은 그런 말을 했어요.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수많은 "나쁜 기집애"를 거느린 씨엘에게 나쁜 여자란?

솔직하고,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도전적이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기만의 '규율'을 가진 여자들. 저는 용기 있는 여자들을 좋아해요. (p253)

 

 

씨엘은 무엇이 두렵나요?

제가 용기를 가지고 임하는 모든 것. 두렵기 때문에 용기를 내는 것이니까요. 두려움과 용기는 공존하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것부터, 모든 건 두려움에서 시작되죠. 이를테면 저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걸 꽤 두려워해요. (p260~261)

 

 

 

 

- 강지영

강지영 아나운서는 불필요한 '쿠션어'를 사용하지 않고 정중하되 정확하게 언어를 사용한다는 인상을 줄곧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젊은 여성이 어떤 이모티콘이나 '~' 기호, 일말의 애교도 없이 건조하게 얘기하면 '이 사람 나한테 화났나?'라고 생각하곤 하잖아요.

그래서 전 그냥 일관성 있게 직언합니다. 신입 때부터 그랬어요. '그냥 원래 이런 애구나, 근데 알고 보면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물론 계속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뭐 누구에게나 오해할 권리도 있는 거니까. (p278)

 

 

 

 

- 김민경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하나요?

누군가와 함께 할 때는 강해요. <골때녀>에서 같은 팀인 (오)나미와 (김)승혜 같은 친구들이 멘탈이 무너질 때, 제가 잡아주는 역할을 하죠. 저는 스스로보다 주변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같아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그래, 이들과 함께해야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선 내가 강해져야지'라는 마음에서 비롯되거든요. 그게 20년 넘게 제가 일을 지속해온 힘인 것 같아요.

 

어떤 게 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버티는 것. 저는 느리지만 끈기가 있어요. 지구력이 좋죠. 개그맨 공채에 계속 떨어질 때, 전유성 선배님이 "너 이 일을 진짜 하고 싶니?"라고 하시기에 그렇다고 했떠니 "끄럼 끈을 놓지 말고 붙자고 있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빛나는 재능도 재치도 없지만 그것만큼은 잘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래서 정말 포기하지 않고 일이 없을 때도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면서 붙잡고 있었어요. 생계를 위해 마트 시식 코너 알바도 했고 통조림용 귤 까는 알바도 했고, 문제집을 만드는 알바도 했는데, 개그우먼의 꿈을 놓은 적이 없었죠. 8년간 그렇게 버텼어요. (p286~287)

 

 

어떤 게 용기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높이 사는 것. 그렇기에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것.

 

김민경은 용감한가요?

저는 용감하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내성적이고 자존감도 낮고 소극적이고... 주변인들이 "네가 어떻게 연예인이 됐지?"라고 말할 정도로요. 안전한 걸 추구해서 늘 먹던 것만 먹고 익숙한 것만 했죠. 그런데 일을 하면서 바뀌었어요. <맛있는 녀석들>을 하면서 처음 보는 음식들을 먹게 됐는데, 세상에 너무나 맛있는 게 많은 거예요.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이 맛을 모르고 평생을 살았겠죠. <운동뚱>을 하면서 마흔 살이 되도록 안 하던 수많은 운동을 해보고 재미를 알게 됐고요. "너 이 운동 정말 잘하잖아" 같은 긍정적인 얘기를 들으면서 자존감도 높아졌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용감한 사람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요. (p292)

 

 

 

 

- 최은영

먼저,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바로잡고 싶은 사실이 있어요.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던데, 사실 단편 <고백>에서 '미주'가 '진희'를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건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였죠. 당신에게 무해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제목을 보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지만, 제 책을 읽으신 분이라면 오해하지 않으실 거예요. 무해한 사람이라는 건 애초에 가능하지 않아요. 인간은 접촉하는 순간 서로를 어느 정도 훼손시키면서 상처를 주고받게 되죠. 그게 관계잖아요. 이 제목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던 건 '내게'라는 부분인데요, 누군가가 내게 해를 끼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느껴진다면 내가 그렇게 느낄 뿐, 그 사람은 나에게 맞추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일 거예요. 그렇기에 내게 무해하다고 생각하는 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무해하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지은 제목이었죠.

 

최은영의 소설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당신의 글이 다정하지만은 않다는 거예요. 오히려 때론 비수같이 모든 걸 단절하죠. 당신이 생각하는 다정함이란 뭔가요?

다정도 강함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하지만 제가 봤던 다정한 사람들은 오히려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었어요. 자신이 그러하니, 역지사지로 다른 사람들 또한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요.

 

그리고 당신의 인물들 사이엔 늘 일정 이상의 간격이 있죠.

산다는 건 계속해서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 같아요. 저 역시 살아오면서 늘 이별을 겪었는데요.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런 순간들은 늘 저를 힘들게 했어요. 관계가 끝난 후 그 관계에 대해서 되새겨보는 시간이 제게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었고요. 도시의 익명성과 숱한 이별 속에서 저는 과거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쭉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부럽기고 했어요. 한동네에서 살면서 빵집 가면 늘 아는 빵집 아저씨가 있고, 이발소 가면 늘 아는 이발소 아저씨가 있고, 생활의 공간에서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런 삶이요. 하지만 현대사회는 완전히 익명의 사회잖아요. 공간조차도 일시적이어서 좋아하는 밥집이든 카페든 몇 년 가지 못하고 이사하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많죠. 현대사회의 일시성과 익명성은 쓸쓸하다는 생각에서 관계들을 그렇게 묘사해왔던 것 같아요. (p301~302)

 

 

작가님은 소수자, 약자, 혹은 평범한 사람이더라도 그에게 있는 가장 약한 마음에 대해 말합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듯하네요.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적응하지 못했던 까닭은 한국 사회 특유의 권위주의와 제가 어릴 적 느낀 군사주의적 시스템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군부독재의 잔재로 힘을 추앙하고, 서열을 만들고, 약한 자는 소외시키고.. 어릴 때라 머리로 개념화시키진 못했지만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억압이 있었어요. 그 고통을 지니고 자라난 어른으로서, 저는 누구에게나 소수자성이 있다고 느끼고 약자의 얼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수자성이 있을 때, 다수자들이 갖지 못한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을 더 깊고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미국인들은 영어만 할 줄 알면 되잖아요. 하지만 영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들은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모어가 아닌 언어를 배워야 하고 그를 통해 여러 시각을 획득하죠.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해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언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저는 그것이 제 문학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더 깊게 보는 것.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 소수자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는, 인간을 피상적으로밖에 그려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p305)

 

 

나아가 작가님은 '우리'를 피해자로만 인식하지 않아요. 때론 베트남전쟁의 가해자(<신짜오, 신짜오>)로, 제3세계 여성을 착취하는 자본가(<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로 그리죠. 우리의 피해 사시로가 가해 사실을 역지사지하며 공감대를 형성해요.

저는 나르시시즘은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나르시시스트들은 언제나 남 탓을 하고 조금도 성장하지 못하죠. 저는 작가들이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소수자고, 나는 항상 옳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나는 항상 피해자에만 머물고 절대 가해자가 될 리 없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그렇게만 돌아가겠어요? 내가 피해자라도 누군가에겐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나는 절대 가해자가 될 리 없다고 믿으면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무자비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모든 건 상대적인 것이고 영원한 약자란 없는데도요. (p308)

 

 

그러나 최은영의 인물들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디에서 희망을 보나요?

게일 콜드웰이라는 작가가 이렇게 썼어요. "희망이 내 주특기는 아니지만, 희망의 물리적 형태가 추진력이라면 나는 그걸 지녔다"고요. 제게도 희망이라는 것은 없어요. 다만 추진력이 있습니다. 힘들고 괴로워도, 내일의 나를 위해 조금 더 나아가자. 제겐 어릴 때부터 나이지고 싶고 잘 살아보고 싶고 애를 써서 더 나은 미래로 가고 싶은 내적 동기가 늘 있었어요. 지금보다도 약했던 내가 어떻게든 여기까지 와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 나는 희망은 없었지만 추진력은 있었지. 이 노력에 대해 배신을 하지 말자. 그리고 계속 나아가자. 그게 제 힘이에요.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