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1장 테크놀로지에 대한 통제
2장 운하의 비전
3장 설득 권력
4장 비참함의 육성
5장 중간 정도의 혁명
6장 진보의 피해자
7장 투쟁으로 점철된 경로
8장 디지털 피해
9장 인공 투쟁
10장 민주주의, 무너지다
11장 테크놀로지의 경로를 다시 잡기
감사의 글
출처 및 참고 문헌에 관하여
참고 문헌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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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 금방 여기서 지적하는 위험이 현실에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
지금 뉴스에 나오니까. 제법 많은 게 지나간 이슈인 건 안 비밀.
그리고 AI 혁신으로 조만간 인류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세계가 얼마나 '멋진 신세계'일지 떠드는 여러 AI 회사의 대표들의 말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선의와 아름다운 말과 예상할 수 없는 열정에 의해 깔리는 고속도로인가' 생각하게 된다.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미래니까.
- 그리고 이건 좀 뻘얘긴데... ;;;
데이비드 싱클레어의 <노화의 종말>을 읽으며 이거... 3페이지만 읽으면 되는 건데 되게 길게 쓰네 ;;; 했던 적이 있다.
노화는 질병이고, 질병이므로 고칠 수 있고, 배고픔이 주는, 추울 때 느끼는, 육체적 활동으로 호흡이 찰 때 느끼는 스트레스는 좋다.
그때 느끼는 스트레스가 노화라는 당신에게 닥치는 질병의 도래를 늦춰줄 것이다, 라는 게 전부는 아니었지만
딱 그게 내가 그 책을 읽으려던 동기의 대부분을 해결해줬다.
바로 그 세 페이지를 찰칵찰칵 사진으로 찍어 어머니께 보내드리고 잔소리를 다다다다다 시전했다.
<노화의 종말>이 워낙 극적 예시라 이렇게 예를 들었지만 <권력과 진보>도 이렇게 두꺼울 필요가 있나... 싶다는 개인적 의견 ;;;
프롤로그
기술 진보가 학교, 공장, 감옥, 병원이 더 잘 돌아가게 해줄 것이고 이것이 모두에게 득이 되리라는 것이 제러미 벤담에게는 너무나 자명했다. 과하게 격식을 갖춘 옷차림에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휘황한 어휘를 구사하는 그를 오늘날의 실리콘밸리에 데려다 놓으면 생뚱맞아 보이겠지만, 그의 사고는 오늘날 유행하는 견해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이 견해에 따르면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역량을 확장해 주고 그것이 경제 전반에 적용되면 효율성과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킨다. 그다음에 사회는 조금 늦게든 빠르게든 그 이득을 분배할 방법을 알아낼 것이고, 이는 모두라고 말해도 될 만큼 많은 사람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아무튼 그렇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8세기 스코틀랜드 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또한 현대의 벤처캐피탈 이사회에 합류하거나 <포브스Forbes>에 글을 쓴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스미스의 견해에서, 더 나은 기계의 도입은 거의 자동적으로 노동자들의 더 높은 임금으로 이어진다.
더 좋은 기계, 더 나은 솜씨, 더 적절한 분업과 작업의 분배, 이 모두가 진보의 자연스러운 효과인데, 이런 것들 덕분에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은 훨씬 적어진다. 따라서, 사회가 번영함에 따라 노동의 실질 가격이 매우 상당한 속도로 상한한다 하더라도...
그렇든 아니든 저항은 어차피 무용하다. 스미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상업의 법칙이 "자연법칙이며 따라서 신의 법칙"이라고 말했다.
신의 법칙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멈출 수 없는 테크놀로지의 행진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쨌거나 간에 이러한 발전에 저항을 왜 하는가?
이 모든 낙관이 무색하게 지난 1000년의 역사는 발명과 혁신이 "공유된 번영"과는 딴판인 결과를 불러온 사례로 가득하다. (p15~16)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상보다 생활 수준이 높은 이유는 우리 앞에 있었던 산업 사회 국면들에서 시민과 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직해 테크놀로지의 노동 여건에 대해 상류층이 좌지우지하던 선택에 도전했고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해 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일을 우리가 다시 해야 한다.
...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에도 아랑곳없이, 오늘날의 지배적인 내러티브는 250년 전 영국에서 지배적이었던 내러티브로 놀랍도록 가깝게 되돌아간 듯 보인다. 아니, 우리는 제러미 벤담, 애덤 스미스, 에드먼드 버크의 시대보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더 엘리트주의적이고 더 맹목적으로 낙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1장에서 보겠지만, 오늘날 굵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진보의 이름으로" 생겨난 고통에 또다시 눈과 귀를 닫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진보가 결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오늘날의 "진보"는 또다시 소수의 기업가와 투자자만 부유하게 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량과 권한을 박탈당하고 이득은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더 포용적인 새 비전이 생겨날 수 있으려면 사회의 권력 기반이 달라져야 한다. 19세기에도 그랬듯이, 그러려면 통념에 맞설 수 있는 조직과 반론이 있어야 한다. 널리 퍼진 비전에 도전하고 테크놀로지의 방향이 협소한 지배층의 통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19세기 영국이나 미국에서보다 오늘날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때보다 덜 필요하지는 않다. (p19~20)
1장 테크놀로지에 대한 통제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에 대한 우려가 늘 있긴 했다. 기술적 실업은 1930년에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새로운 생산 방식이 인간 노동력의 필요성을 줄여서 대규모 실업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나타내기 위해 만든 말이다. 케인즈는 산업 테크놀로지가 앞으로도 빠르게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노동의 사용을 절약하는 수단이 발견되는 속도가 노동의 새로운 사용처가 발견되는 속도를 능가함으로써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도 설명했다. (p25~26)
지난 10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사례와 현대의 실증근거 모두 한 가지 사실을 더없이 명백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광범위한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는 사회가 내리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p29)
진보의 밴드왜건
자동화의 우울
이것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산업용 로봇 같은 많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기계와 알고리즘이 수행하는 업무군을 확대하면서 전에 그 업무들을 수행했던 인간 노동자를 대체한다. 자동화는 평균생산성을 높이지만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감소시킬 수 있다.
케인즈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자동화였고, 그가 집필을 하던 20세기 초에 자동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영국 산업혁명 초기에 직물 분야에서 벌어진 많은 상징적인 혁신들 모두가 새로운 방직기와 방직기로 숙련 장인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p33~34)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는 데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업무의 창출이다. 다시 자동차 업계를 보면, 1910년대부터 시작해 헨리 포드Henry Ford의 지휘하에 생산 방식이 대대적으로 재조직되면서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량생산과 어셈블리 라인 시스템은 디자인, 장비 작동, 사무 관리직, 기술직 등에서 새로운 업무를 대거 창출했고 이로써 자동차 업계의 노동자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7장에서 상세히 설명했다). 새로운 기계가 인간 노동력이 쓰일 새로운 용처를 만들어 내면 노동자가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 확대되고, 이는 한계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새로운 업무 창출의 중요성은 미국의 초창기 자동차 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두 세기 내내 새로운 업무의 창출은 고용과 임금이 증가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
기술적 실업과 관련해 리카도와 캐인즈가 말한 최악의 두려움이 현실화하지 않은 이유는 이와 같은 새 업무의 창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20세기 내내 자동화가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노동 수요는 줄지 않았는데, 이는 자동화가 노동자가 수행할 새로운 활동과 업무를 창출하는 또다른 발달 및 재조직화와 함께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p35~36)
이 모든 것이 테크놀로지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가리킨다. 바로 선택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우리의 집합적인 지식을 사용하는 방법은 아주 많으며 혁신의 방향을 잡는 방법은 그보다도 더 많을 것이다. 디지털 도구를 감시에 사용할 것인가? 자동화에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업무를 창출함으로써 노동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미래의 진보를 어느 방향으로 이끄는 데 우리의 노력을 쏟을 것인가?
생산성 밴드왜건 효과가 미미하고 이득이 폭넓게 공유되게 할 자기조정적인 메커니즘이 없을 때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선택은 더욱 중대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고 그러한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요컨대, 생산성 밴드왜건이 상정하는 인과관계 사슬의 첫 번째 고리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선택이 내려지느냐에 달려 있다. 가용한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 모두가 단순히 업무를 자동화해 인간 노동력이 불필요해지게 만들거나 노동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을 향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p37~38)
노동자의 권력이 중요한 이유
전반적으로, 리카도와 케인즈가 모든 세부사항까지 다 맞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생산성 증가가 필연적, 자동적으로 폭ㄴ럽게 공유되는 번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공유된 번영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고 테크놀로지의 이득이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분배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더 근본적으로,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 새로운 기법과 기계는 아무런 가로막는 것 없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이 아니다. 기존의 기술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또 새로운 혁신을 위한 노력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에 따라,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한 자동화와 감시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새로운 업무의 창출과 노동자의 역량 강화를 가져올 수도 있따. 더 광범위하게는 공유된 번영을 가져올 수도 있고 막무가내로 심화되는 불평등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이 선택들은 "사회"가 집합적으로 내려야 할 의사 결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업가, 경영자, 미래주의자, 때로는 정치인이 내리며, 그 선택은 기술 진보의 과정에서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되는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p41)
낙관해도 좋지만 단서가 있다
사회신용체계social credit system를 도입하기로 한 중국 공산당의 결정을 생각해보자. 사회신용체계는 개인, 기업체, 정부기관 등에 대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그들이 믿을 만한지와 규칙을 잘 지키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2009년 지역 단위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전국적으로 적용해 소셜미디어에 당이 선호하는 바에 어긋나는 글을 올린 개인이나 기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14억 명에게 영향을 미칠 이 결정은 소수의 당 지도부가 내렸다. 사람들은 발언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교육, 공공 기관 취업, 타 지역이나 해외로의 여행, 심지어는 공적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주거지를 구할 가능성 등이 모두 이 시스템의 영향을 받게 되었지만 당 지도부는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독재 국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2018년에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사용자들에게 "의미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제공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수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실에서 이것이 의미한 바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언론 기관이나 잘 확립된 기성 브랜드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등 다른 사용자들이 올린 포스팅을 더 상위에 노출한다는 것이었다. 목적은 "사용자관여user engagement"를 높이는 것이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 올린 포스팅에 관심을 더 보이고 클릭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음을 페이스북이 알게 되어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알고리즘을 바꾸고 나서 발생한 주요 결과 중 하나는 가짜 정보와 정치적 양극화의 증폭이었다. 거짓 정보나 오도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 사용자에게서 사용자에게로 빠르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페이스북 사용자(당시 약 25억 명이었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는 수십억 명도 가짜 정보가 급속히 확산되어 정치가 쇠락하면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알고리즘을 바꾸기로 한 결정은 저커버그와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 등 몇몇 최고위 경영자와 엔지니어가 내렸고, 이들은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민주주의의 쇠락으로 영향을 받게 될 시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과 페이스북의 의사결정을 추동한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둘 다 과학적 테크놀로지 자체에 내재한 속성에 의해 내려진 결정은 아니었다. 자신의 경로를 거침없이 나아가는 진보의 행진이 반드시 거치게 되는 달므 단계여서 나타난 일도 아니었다. 두 사례 모두에서 우리는 [의사결정자의] 이해관계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을 볼 수 있따. 반대자를 억압하려는 이해관계, 그리고 온라인 광고 수입을 늘리려는 이해관계와 같이 말이다.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고 무엇이 우선순위여야 하는가에 대한 지배층의 비전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가 통제에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를 통제하기 위해,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데이터와 사회적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테크놀로지가 사용되었다.
이것이 프랜시스 베이컨이 놓친, 그리고 275년의 인간 역사가 더 지나고 나서 H.W 웰스가 깨달은 지점이다. 테크놀로지는 통제의 문제이며 자연에 대한 통제이기도 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통제이기도 하다는 점 말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변화에서 어떤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이득을 본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이것은 생산을 조직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 일부 사람들의 부와 권력을 강화하고 다른 사람들의 권력을 훼손한다는 의미다. (p47~49)
이번 것은 불이다
프롤로그에서 보았듯이, 테크놀로지의 유익한 힘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주장과 인류의 불 사용에 대한 이야기에서처럼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역전시켜 줄 것이라고 믿곤 한다. 불 덕분에 인간은 약해 빠진 사냥감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포악하고 파괴적인 포식자가 되었다. 우리는 다른 수많은 테크놀로지도 이와 같은 동일한 렌즈로 본다. 바퀴를 발명해 거리를 정복했고 전기를 발명해 어둠을 정복했고 의약 기술을 발명해 질병을 정복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모든 주장과 달리, 선택된 경로가 모든 이에게 혜택을 주리라고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 생산성 밴드왜건은 종종 허약하며 저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 목도하고 있는 것은 공공선을 향해 멈추지 않고 전개되는 진보가 아니라 강력한 테크놀로지 리더들이 공유하는 비전이 발휘하는 영향력이다. 그들의 비전은 자동화, 감시, 대규모 데이터 수집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공유된 번영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있다. 또한 그들의 비전은 소수 지배층의 부와 권력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 새로운 "비전 과두 귀족"을 출현시켰다. 동일한 배경과 비슷한 세계관, 비슷하 야망을 가진, 그리고 불행히도 비슷한 사각지대를 가진 소수의 테크놀로지 리더들을 말한다. "과두 귀족"이라고 일컬은 이유는, 동일한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진 소수로 구성된 배타적인 집단이 사회적 권력을 독점하고서 그 권력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은 무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탱크나 로켓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회랑에 접할 수 있고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비전 과두 귀족은 실제로 놀라운 경제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기 때문에 너무나 설득력 있어 보인다. 새로운 테크놀로지, 특히 기하급주적으로 증가하는 인공지능의 역량이 막대한 풍요와 자연에 대한 막강한 지배를 가져다주리라는 내러티브도 이들의 설득력을 강화한다. ... 가장 중요하게 이들 현대판 귀족들은 저널리스트, 여타의 기업계 인사, 정치인, 학자, 모든 종류의 지식인 등 대중의 견해를 구성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을 잘 홀린다. 중요한 주장들이 논의될 때면 비전 과두 귀족은 언제나 테이블에 앉아 있고 언제나 마이크를 앞에 두고 있다.
현대판 과두 귀족을 제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꼭 우리가 벼랑에 서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이 우리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인 이유는 그들의 한 가지 면에서는 옳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놀라운 도구가 있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이뉴가 해낼 수 있는 것의 범위를 크게 증폭시켜 줄 수 있으리라는 점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러한 도구를 사람들에게 이롭게 사용하기로 선택해야만 가능한 일이며, 우리가 현재의 글로벌 테크 지배층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계관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 (p56~58)
이 책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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