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2026 이상문학상 작품집

살아남자 2026. 5. 6. 12:04

목차

  • 1부 대상
    위수정 수상작 「눈과 돌멩이」
    수상 소감 「어둠 안에서 내미는 손들」
    문학적 자서전 「유예되는 절망」
    자선 대표작 「오후만 있던 일요일」
    대담 위수정 작가와의 대담 │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
    작품론 「우리를 살게 하는 위험한 소설」 │ 조연정 (문학평론가)

    2부 우수상
    김혜진 「관종들」
    김혜진 작가와의 대담 │ 박혜진 (문학평론가)

    성혜령 「대부호」
    성혜령 작가와의 대담 │ 전기화 (문학평론가)

    이민진 「겨울의 윤리」
    이민진 작가와의 대담 │ 소유정 (문학평론가)

    정이현 「실패담 크루」
    정이현 작가와의 대담 │ 인아영 (문학평론가)

    함윤이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함윤이 작가와의 대담 │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3부 심사평
    심사 경위
    심사평 김경욱 (소설가)
    김형중 (문학평론가)
    신수정 (문학평론가)
    은희경 (소설가)
    최진영 (소설가)

 

 

 

눈과 돌맹이, 위수정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나한테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게. 콩콩 두드렸을 뿐인데 와장창 망가졌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약한 유리 한 장이 우리 집 현관문이었다는 게 더 놀랍지만.

  너는 잊어도 될 걸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어.

  맞아. 그런 기억들은 이제 좀 사라졌으면. (p12)

 

 

  나고야의 장어덮밥은 먹지 못했다. 수진이 여행을 취소했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가자고 한 것도, 약속을 취소한 것도 수진답지 않았다. 수진은 미안하다고만 했다. 유미는 이유를 물었다. 나중에 말해줄게, 나중에. 하지만 나중은 없었다. 수진은 그다음 해 담도에서 암이 발견되었다. 간까지 전이됐대. 항암 치료에 들어가면서 수진은 만남을 꺼렸다.

  나 완전 골룸 됐어. 나중에 봐. 머리라도 나면.

  수진은 애써 농담처럼 말했지만 아무도 웃지 못했다. 그리고 투병 중에 수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걔가 그랬다는 게 너 믿어져? 재한이 유미에게 물었을 때 유미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난 수진이가 없다는 게 안 믿어져. ··· ···우리랑 있었잖아. 유미는 눈물을 닦았다. 술을 더 먹여서라도 그때 이유를 들었어야 했어. 같이 일본이라도 다녀 왔어야 했어. 오지 말래도 자주 갔어야 했어. 유미와 재한의 후회는 끝이 없었다. (p16~17)

 

 

  재한은 유미가 고집을 피운다고 생각했다. 유미는 핸들을 기어이 산 쪽으로 돌렸다. 재한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유미의 흔들림 없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하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한은 유미의 주장을 한 번도 꺾어본 기억이 없었고, 그것이 이제 와 부당하게 여겨졌다. 재한은 핸들을 잡은 유미의 손을 보았다. 저 손을 떼어놓고 싶다. 저 꼭 다문 입술이 놀라 벌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 무방비 상태로 넘어지는 것을······. 재한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낯설어서 멈추려고 했지만 생각은 자꾸만 이어졌다. 재한은 창을 내리고 숨을 크게 한번 쉬었다. 미쳤네. 이게 다 눈 때문이야. 너무 많은 눈 때문에. (p26~27)

 

 

  난 더 안 갈래.

  내일 못 오면? 일기예보에는 계속 눈인데.

  재한은 이 반복되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었고,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아, 그럼 너 혼자 가든가! 그 소리에 놀란 유미가 입을 벌린 채 재한을 보았다. 재한이 그렇게 소리를 내질러본 적은 군대에 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재한 역시 자신의 목소리에 놀랐다. 재한은 수치심과 흥분이 뒤섞여 머리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씨발. 재한은 자기도 모르게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너? 돌았냐? 유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내 얘기를 안 듣잖아. 너무하잖아. 나 정말 걱정돼서 그래. 미안. 재한은 재빨리 사과한 후 몸을 숙이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눈밭 위로 흩어졌다. 재한은 한동안 숨을 골랐다. 소리를 지르는 순간 느꼈던 은근한 쾌감을 숨기고 싶었다. 재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을 피하는 재한을 향해 유미가 작지만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알았으니까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지 마. 유미의 입술이 창백했다. 재한은 후회했다.

  유미는 가방에서 약통을 꺼내 들었다.

  좀 더 가볼래? 재한이 미안함이 잔뜩 묻은 어조로 물었다.

  유미가 한숨을 푹 내쉰 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일단 여기 뿌리고, 내일 올 수 있으면 다시 오고. (p29)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아.

  둘 다 울지는 않았다. 뼛가루를 뿌리는 행위는 영화에서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비참한 기분이었다. (p30)

 

 

  자신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계, 타인, 결국에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되는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어요. 손에 쥐는 순간 녹아버리는 눈처럼 '무엇 하나 정확하게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인식이 이 소설에서 중요했습니다. (p104)

 

 

 

 

관종들, 김혜진

 

- 경계를 탐색하는 이야기. 이것은 옳바름에 대한 적절한 안내일까, 다름에 대한 무례한 참견일까.

  경계를 세우는 일은 늘 어렵다. 실제 뭐든 '적당히'가 좋은데 나의 '적당히'와 나 아닌 사람이 가진 '적당히'라는 것은 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까. 더욱이 경계라는 것은 세우기에 따라 내가 경계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밖에서 안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이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되어버린다. 나는 방어하려는 사람일 수도, 침범하려는 사람일 수도 있게 된다. 어렵다. 어렵다는 건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거고, 단순 옳고 그름으로 판가름나는 게 아니라 늘 스스로 물어보고 경계하고 돌아봐야 할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굳이 보면 소설 속 부부가 관종으로 수렴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내용만 보자면 차라리 손을 들어주고 싶다. 요즘 세상에서는.

 

 

 

 

성혜령, 대부호

 

- '대부호'라는 게임을 처음 들어봄.

  게임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_-;;;;

  그때부터 뭔가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다, 망했다 싶었음.

  아니나 다를까, 뭔가 좀 도식적으로 읽힘. ;;;

 

 

 

 

겨울의 윤리, 이민진

 

... 머리 일부가 움푹 파여 침을 질질 흘린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묘사였다. 나는 끔찍한 내용보다 아직도 해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 죽었으므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해진은 열여섯 살에 멈춰 있을 텐데 사람들은 어떻게 성인이 된 그 애를 알아본 걸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누구 하나라도 말을 걸었다면 그 애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게. 사람들은 온갖 이야기를 지어내고 믿으면서 그 애의 죽음만은 상상하지 못한다. (p209)

 

... 내가 기억하는 해진은 조숙한 아이였다. 부모님의 이혼처럼 인생에는 자연재해와 같은 사건이, 속절없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걸 일찍이 깨달은 아이. (p210)

 

  암자에 머물며 해진은 왜 사람들이 기를 쓰고 정상에 오르는지 알게 됐다. 암자에서 본 산은 거대한 봉분처럼 고요했으나 암자로 돌아오면서 본 숲은 전쟁터였다. 생명력이 넘칠수록 혼란한 풍경이었다. (p216)

 

... 숨이 차오른다. 부연 입김이 눈앞에 어린다. 흩어진다. 다시 숨이 피어오른다. 흩어진다. 사리진다. 미워하지 않는다. 원망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던 듯 과거를 묻고,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모든 게 희미해진 곳까지 멀어진 나는 이곳에 묻힌 게 뭔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 채 운다. 아무리 울어도 기억의 정경은 녹지 않는다. 용서해줄 사람도 용서받을 사람도 없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은 영원한 겨울이다. (p239)

 

 

- 비슷하지만 다르다. 실제 그 지점 전까지의 삶을 전생이라고 불러도 될, 지금의 삶을 사는 사람이 가질법한 감각을 이 소설은 꽤 비슷하게 보여주고 있으나 다르다. 하기사 그건 또 사람마다 다를 것일 테니 얼마만큼 비슷하고 다를지는 읽고 감각하는 사람마다 같을 수 없겠지만, 사람은 그렇게 평온만할 수 없다. 평정으로 돌아갈 수는 있어도. 굳이 따지자면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나오는 이즈미 정도의 황폐함이 그 평온의 색깔이라면 몰라도... 뭐 꼭 그래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용서해줄 사람도 용서받을 사람도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아주 잿빛일 테다.

 

 

 

 

실패담 크루, 정이현

 

제일 재밌었다.

실패담마저 성공시켜야 한다는 인간이라는 건 참 지구를 말아먹기 충분한 종이로구나 싶었다.

그 성공의 시도가 리볼버처럼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대부분은 실패담이다. 그러다 철컥이 아닌 '탕' 소리가 난다.

러시안룰렛처럼 이렇게 사람을 밀어내고 다시 젊은피를 수혈하고 철컬철컥 빈소리를 내다 탕!

인류는 그래서 멸망하고 인류는 그런 이유로 멸종돼도 되는 것인지도.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함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