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수상작
임솔아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 9
수상작가 자선작
임솔아 금빛 베드 러너 39
수상후보작
김혜진 관종들 73
박솔뫼 사과 105
서장원 상어 133
이미상 일일야성一日野性 157
임 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193
심사평
강동호 사랑 이후의 삶 229
김지연 사랑의 글쓰기 234
백지은 더 짙은 소설들 237
서희원 위안의 시간 242
안보윤 아름답고 기이한 245
수상소감
임솔아 빈 진실 249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 임솔아
언젠가부터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물 밖에서 걷는 것보다 편안해졌다. 물속이 더 위험한 공간이라는 걸 잊은 적은 없었지만, 물에 들어갈 때마다 몸이 이상하면 바로 말을 하자며 서로에게 약속했지만.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공간. 우리에게는 물속이 그랬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대체로 무던했고 평화로웠다. 격렬하게 싸움을 한적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한 적도, 둘 사이에 이견을 부추길 만한 갈등이 일어난 적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하다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욕망하지 않기로 했다. 윤미와 나는 그것들 함께 포기했다. 포기한 욕망들이 포기한 이후에도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났지만 요일에 맞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듯 우리는 버린 것들을 또 버리기 위해 함께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돌봤다. 그게 더 사랑 같다던, 열일곱의 윤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윤미는 기억도 못 하던 말. 나는 멀찌감치에서 밝게 빛나는 파초 숲의 야광 버섯들을 바라보았다. 한 발씩 다가갈 때마다 더 먼 곳의 버섯이 나타났다. (p36~37)
- 처음에는 근미래라는 걸 몰랐다. 당연히. 그래서 열일곱의 노래방? 에서 조금 헤맸다.
동의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부본도 있었지만 모든 게 '극심'해지던 한 시기를 지난 요즘에 발췌한 저 같은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 꽤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물속이라 부력이겠지만 나는 중력을 생각한다. 조금 더 가벼워진, 지구보다는 달에 가까운, 통 하면 통 하고 뜨고 가라 앉는 통통통.
금빛 베드 러너, 임솔아
관종들, 김혜진
사과, 박솔뫼
선호는 언제까지 지금 회사에서 일을 할 것인지 동시에 언제까지 카페에서 일을 할 것인지 종종 물었는데 그것은 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음 달이라도 당장 그만둘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꽤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왜인지 글쎄 당분간은 다니지 않을까 라고 답하게 되었다. 일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해요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간절하게. 그것이 가장 정확한 답이었는데 정확한 답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도시는 다른 생물처럼 모습을 바꾼다고 말할 수 있을지 애리는 그게 늘 어렵다고 느꼈다. 애리는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하든 어디에서 살아가든 자신은 잠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선호에게 직접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잠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고 나는 그러한 공간이 있고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바다가 잘 보이게 방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도 언제나처럼 애리의 잠은 단단하고 부드럽게 애리를 지지할 것이다. (p120)
- 박솔뫼 작가님의 글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근래에는 더욱 못 읽었지만, 확실히 볼 때마다 문장과 그것이 주는 리듬이 남다른 작가인 거 같다. 그리고 희소한 것이 대체로 그렇듯 귀하다는 느낌? 생각? 같은 게 든다. 이 독특함이 좋네. 물결치는 것 같달까... ㅎ
상어, 서장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정연의 옆얼굴을, 내가 한눈에 반했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여기는 뺨과 코와 턱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전남편도 전 애인도 널 때릴 것 같았는데, 난 안 그럴 것 같다는 거야?"
나는 그렇게 물었지만, 묻기 전에도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연이 내게 주눅 들거나 위축되어 있다는 생가을 나는 해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 중 누군가 눈치를 보고 있다면 차라리 내 쪽이었다. 정연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정말 좋아하는지 늘 확인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래, 그게 어쨌다는 건데?"
정연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나는 정연의 말에 대꾸하지 않다가 잠시 뒤 물었다.
"여긴 사람도 거의 없고, 나랑 단둘이 차에 있고, 나는 무척 화가 났어. 내가 무섭지 않아? 내가 너보다 힘도 세고 더 크고 무겁고, 그리고 그걸 너도 알잖아."
"그만해."
"내가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어. 대답해." 나는 말했다. "나를 남자라고 생각하기는 해?"
정연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날 때리고 싶어?"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정연의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진동했다. 정연은 전화를 받았다. 통화 내용이 내게까지 다 들려왔다. (p148)
"상어를 본 적이 있어요?"
"어릴 때 아쿠아리움에 갔었어요. 전에는 상어가 한 번도 무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거기서 보고 겁에 질렸죠. 거기서 사온 상어 인형을 침대 밑에 숨겨뒀던 게 기억나네요. 그런데도 인형을 버리진 않았어요. 상어는, 아주 멋졌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서핑 중인 성록을 공격하는 거대한 상어를 상상했다. "실제로 만나니 어떻던가요?"
"엄청나게 크고 사납더라고요." 성록은 회상하듯이 잠깐 눈을 감았따. "그리고 아주 멋졌어요. 잘생긴 놈이었어요."
"그래서 다들 상어를 좋아하나 봐요."
성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어는 물밑 어딘가에 있어요. 하지만 수면 위에선 도저히 상어에 대해 짐작할 수 없어요.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크고 위험한지, 또 얼마나 배가 고픈지. 하지만 서퍼들은 다들 상어를 기대하죠. 한 번쯤 보고 싶어 해요."
"저는 서퍼가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대답해싿. 잠시 뒤 성록은 문을 열고 먼저 방을 나섰다. 리쉬에 매달린 서프보드를 덜그럭거리면서. 그리고 나는 이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걸, 어둡게 넓은 해변으로 나가 내 아내 정연을 만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p154~155)
-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깔끔하다. 작가님 기질이나 성격이 그러함이 분명하다. '상어'는... 나는 눈이 그리 밝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인지 좀 잘 보인다. 분명한 걸 좋아하는 편이라 나는 나쁘지 않은데 눈 밝은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내가 눈이 어두워서... ;;;
일일야성, 이미상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임현
... 자신을 믿어준 것은 원철이었지, 그 여자가 아니었다. 어디 원철뿐이었을까. 청혜 역시 다르지 않았따. 누구보다 원철을 믿고 의지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떤 종류의 믿음이었나. 언제든 멈출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신앙보다는 가벼웠고, 그걸 누가 먼저 결정하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평범한 신뢰보다는 두터운 줄 알았다. 적어도 사랑이나 소망에 견줄 정도는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원철이 믿고 있던 것은 고작 정혜의 신용이었던 걸까. 한동안 믿음이라는 한 단어가 정혜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매번 긍정적이고 호의적이기만 할 것 같던 그 마음이 왜 이토록 자신을 부끄럽고 비참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정혜는 아주 오래 생각해야만 했다. (p208)
밥이 익어가는 동안 정혜는 민수를 생각했다. 민수의 낡은 빌라에서 맡았던 냄새와 투박하게 깎인 콜라비 한 접시와 정리되지 않은 그 집의 다른 짐들처럼 여전히 식탁 위에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을 올리브나무 화분 같은 것들. 그리고 스물일곱 살, 어느 여름밤에 민수가 "나는 너를 용서할 거야"라고 말했을 때 정혜가 느꼈던 당혹감을 떠올렸다.
"네가 나를? 왜?"
정혜는 자기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느냐고 따지듯이 물었고, 민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없지, 아직은."
그러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앞으로의 모든 잘못들에 대해서 민수는 정혜를 미리 용서한다고 했다. 그것으로부터 이전에 없던 감정이 샘솟았던 순간을 정혜는 기억했다. 그러다 금세 "비겁하다, 비겁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그런 마음들을 떠올리는 자신이 몹시 야비하고 속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기억은 뜻대로 멈춰지지 않았다. 어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다른 기억은 불현듯이 떠올랐다가 머릿속에서 오래 머물기도 했다. 끝이 좋았던 건 아니었으나 정혜는 민수와 6년을 만났따. 이십 대를 보내고 삼십 대를 맞이했던 대부분의 시절을 민수와 함께해다. 만나는 동안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헤어지고 나서는 아쉽고 미안한 일들도 더러 생각이 났다. 한때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민수가 좋았고, 민수를 사랑하는 정혜 자신도 좋았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들은 대체 언제 다 닳아 사라져버린 것일까. 아무 이유 없이 용서를 받는 사람은 무엇으로 그 마음을 돌려줘야 했던 걸까.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으로, 미안한 마음은 미안함으로, 용서하는 마음은 용서로······. 이제 와서 누군가에게 잘못을 따져 물어야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정혜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대체 민수의 무엇을 용서해야 했던 걸까.
그런데 원철아.
정혜는 갓 지은 밥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너는 나의 무엇을 미워했길래 나는 네가 이토록 미운 거니. (p210~211)
- 이 작가님도 뭔가가 한결 같다는 느낌이다.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싶기는 한데... 근데 접해 읽는 작품이 이렇게까지 하나의 결이라면, 뭐 장인이겠거니 한다.
책을 다 읽고, 뭐랄까. 수상작이나 후보작들보다 저번 2026 올해의 문제 소설에서 읽은 조해진 작가님의 '영원의 하루' 생각만 더 난다. 흐음... 내게 큰일은 아니지만 큰일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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